글귀


2025.03.20 12:53

지혜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사랑은 내가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둘 사이로 내 삶이 흐른다.

#가장_깊은_받아들임


2025.03.20 12:11

이 불안전함을, 이 텅 빈 느낌을, 내 존재의 중심에 있는 이 결핍감을 제거하려고 세상을 향해 손을 내뻗습니다.
또 한 개비의 담배, 또 한 번의 성적 만남, 또 한번의 영적 고양 상태, 게임, 스마트폰, 쇼츠.
나는 중독되고, 완고한 믿음 체계에 집착하거나 죽도록 일을 합니다.
지금 경험하는 것을 경험하지 않으려고, 우리 인간은 지금 이 순간 겪는 불편한 느낌과 경험을 피해 달아나려고 아주 복잡하고 위험하거나 폭력적이기까지 한 행위들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저변에서 일어나는 일은 늘 매우 단순합니다.
우리는 '지금 있는 것'에 저항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_깊은_받아들임


2025.03.2 14:44

미래에 이해받고 싶나요?
그건 어떤 면에서 자신이 지금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낀다는 뜻입니다.
미래에 깨닫고 싶나요?
그건 어떤 면에서 자신이 지금 깨닫지 않았다고 느낀다는 뜻입니다.
미래의 사랑을 원하나요?
그건 어떤 면에서 자신이 바로 지금 사랑받지 않는다고 느낀다는 뜻입니다.
“당신이 미래에 얻으려는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은 “당신은 바로 지금 무엇을 피해 달아나고 있나요?”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미래에 어떤 추상적인 것―깨달음, 부유함, 힘, 성공, 사랑―을 얻으려 추구할 때, 그 추구의 깊은 근원에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저항이 자리합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미래의 완전함을 추구할 때, 그 근원에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을 불완전하게 느끼는 경험이 자리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불완전하게 느낄 때 우리의 모든 고통과 추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깊이 받아들일 때 우리의 모든 고통과 추구가 끝날 수 있습니다.

#가장_깊은_받아들임


2024.09.26 14:44

모든 사고, 모든 기분, 모든 욕구, 모든 감각은 '나'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가 조우하는 이런 일시적인 현상들이 총체적인 인간의 표현이라고 지레짐작한다.
그러나 총체성은 결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단일체가 아니라 여러 부분들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_기계에_대하여


2024.09.13 16:07

본질이란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것이며, 우리의 자연적인 상태이고, 참된 감정이고, 참된 성향이다.
반면에 인격은 부모, 동료, 학교 따위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우리에게 부여된 가면이며, 타자를 기쁘게 하고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인격이라는 은폐하는 기계를 발달시킨다.
마치 우리 손으로 서서히 꼭두각시 인형을 만들어서, 그것을 우리의 진정한 욕구들이라고 지레짐작한 것들과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기대하는 것들에 맞춰 춤추도록 하는 식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인형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자기가 만든 꼭두각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인간이라는_기계에_대하여


2024.09.13 15:00

전 존재를 써서 자기 자신이 정말로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을 느껴라

#인간이라는_기계에_대하여


2024.09.13 13:29

취객 옆에서 폭죽에 불을 붙인다면 그 취객의 시선은 폭죽이 쏟아내는 불꽃에 못 박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우리 인격과 세계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튕기는 불꽃들에 대해 습관적으로 주의력을 허비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육체의 입맛과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피상적인 자기의 필요성에 의한 곳이다.

#인간이라는_기계에_대하여


2024.09.13 13:10

자신이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실 잠들어있다.
인간은 몽유병 환자처럼 일생을 살아간다.
그들은 대부분 잠에 빠진 채로 살다가 죽고, 기껏해야 언뜻언뜻 순간적인 반각성 상태에 도달할 뿐이다.
혹시 당신만은 다른 사람보다 더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십중팔구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깊이 잠들어 있을 게 뻔하다.

#인간이라는_기계에_대하여


2024.1.29 18:29

당신이 '어떤 특정한 상황에만 흥분하고 다른 상황에는 흥분하지 않는 다는 사실'

그리고 '그 상황에 감정적으로 자동반응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당신이 흥분시킨 사건이 무엇이든 간에 사실 그것은 새로운 사건이 아님을 말해주는 충분한 증거가 된다.

그것이 당신에게 감정적으로 불편한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아직 통합되지 못한 과거의 불편한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이 당신을 감정적으로 흥분시키는 이유는 대개 그것이 당신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뭔가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신은 그것을 불편하게 여긴다.

...

자신에게 깊게 억압된 과거를 통합할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그것을 '보게'하는 방법으로는 거울의 반영(감정적 흥분을 일으키는 상황)을 이용하는 수 밖에 없다.

억압된 기억들을 의식 표면에 떠올려 의식적으로 통합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당신의 현재 상황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처럼 의도적으로 마련받는 경험의 느낌은 언제나 불편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에게 모욕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해방시켜주기 위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현존수업


2024.1.16 16:59

현존은 내면의 폭풍의 눈을 향해 당신을 이끌고 가서 그것을 통합하도록 도와준다.
폭풍우 속으로 의식적으로 들어가면, 당신은 상상하지 못했던 성장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폭풍우의 사나운 바람은 뿌연 안개 같은 '시간 속에 사는' 당신의 경험을 흩어버리고, 억수 같은 비는 착각과 망상을 깨끗이 씻어 보낸다.

이 내면의 감정의 폭풍우는 그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초대인 동시에 방책이기도 하다.
내면의 감정의 폭풍우는 일종의 관문으로서, 아직 거기에 들어갈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을 저지하여 시간이라는 몽롱한 꿈속에 더 머물러 쉬도록 마음을 바꿔준다.

내면의 감정 폭풍우 속으로 의식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하나의 통과의례이다. 이것은 원인에 영향을 미치고, 그를 통해 울림의 세계로 들어가는 올바른 경로이다.

#현존수업


2024.1.16 16:52

우리 사회에서 '정상적인' 시민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내면에 사나운 폭풍우를 일궈내는 것을 뜻한다.

사회는 당신이 자신의 참 존재를 부정한 결과로서 들어가 살고 있는 조용한 절망 상태를 오히려 정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혼신을 다해 다독거려 억누르고 있는 이 내면의 폭풍우의 존재를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그것은 결코 숨길 수가 없다.

그것은 이원성의 폭풍, 다시 말해 참됨과 그릇됨 사이의 전쟁이요, 현존과 가식 사이의 분열이다.

성인기 자아와 아동기 자아 사이에는 두려움과 분노와 슬픔이라는 거대한 협곡이 놓여 있다.

참된 평화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의식적으로 이 폭풍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을 향해 들어가는 힘이 필요하다.

세상의 온갖 문제를 모두 떠안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인식하는 모든 혼란의 원인을 바꿔놓을 수 있는 길은 '당신 안에' 이미 들어 있기 때문이다.

#현존수업


2023.11.8 15:36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당신이 성공했나 실패했나가 중요하다.
또한 당신이 건강한지 아닌지, 교육을 받았는지 못받았는지가 중요하다.
당신이 부자인지 가난한지가 중요하며 그것은 분명 당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 상대적 차원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절대적 차원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들보다 더 더욱 중요한 무언가는 바로 당신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찾는 것이다.
당신 스스로 만들어낸 일시적인 자아상을 넘어서는 존재하는 그것을.

내면의 평화로움을 찾는 방법은 삶의 환경을 고치고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당신 본연의 모습을 깨닫는 것이다.

#고요함의_지혜


2023.10.31 18:26

자신이 투명해지는 것을 느껴보세요.

물질적으로 견고한 당신의 육체가 없는 상태라고 느껴보세요.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이든 당신을 통과해가도록 두세요.

자동차 경적, 개 짖는 소리, 아이들 울음 소리, 교통 체증과 같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부딪치지 않도록 내면에 저항의 벽을 쌓아두지 마세요.
그 대신 모든 것이 당신을 통과하도록 내버려두세요.

누군가 당신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무례한 말을 한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고 부정적 감정에 빠져드는 대신, 그것들이 당신을 그저 통과해가도록 하세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마세요.
마치 상처받을 사람이 거기 없는 것처럼 행동하세요.

그것이 용서입니다.
이런 방식이라면 당신은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_순간의_나


2023.10.31 17:49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법이야.
우리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으며, 지혜를 체험할 수 있으며,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

'진리란 오직 일면적일 때에만 말로 나타낼 수 있으며, 말이라는 겉껍질로 덮어씌울 수가 있다.' 생각으로써 생각될 수 있고 말해질 수 있는 것, 그런 것은 모두 다 일면적이지.

모두 다 일면적이며, 모두 다 반쪽에 불과하며, 모두 다 전체성이나 완전성, 단일성이 결여되어 있지.

그리하여 세존 고타마께서도 이 세상에 대하여 설법을 하실 때에, 이 세상을 윤회와 열반, 미혹과 진리, 번뇌와 해탈로 나누지 않을 수 는 없었던 거야. 달리 어떤 방법이 없지.

그러나 이 세계 자체, 우리 주위에 있으며 우리 내면에도 현존하는 것 그 자체는 결코 일면적인 것이 아니네.

한 인간이 온통 신성하거나 온통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란 결코 없네.

그런데도 그렇게 보이는 까닭은 우리가 시간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네.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네.
고빈다, 나는 이것을 몇 번이나 거듭하여 체험하였네.

그리고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현세와 영원 사이에, 번뇌와 행복 사이에, 선과 악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간격이라는 것도 하나의 착각인 셈이지.

#싯다르타


2023.10.18 18:43

만약 그대가 돌맹이 하나를 물속에 던지면, 그 돌멩이는 곧장 그 물 아래 밑바닥에 가라앉게 되겠지요.

싯다르타가 하나의 목표, 하나의 계획을 세우면 바로 그렇게 되지요.

싯다르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아요.
그는 기다리고, 사색하고 단식을 할 뿐이지요.
그러나 그는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채, 몸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마치 물속을 뚫고 내려가는 그 돌멩이처럼, 세상만사를 뚫고 헤쳐나가지요.

그는 이끌려가면 이끌려가는 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놔두지요. 그의 목적이 그를 뜰어 잡아당기지요.

왜냐하면, 그의 목적에 위배되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자기 영혼 속에 들여보내지 않기 때문이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마술이라고 부르는 것이오. 마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색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줄 안다면, 마술을 부릴 수 있으며, 자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소.

#싯다르타


2023.10.18 18:24

비로소 그는 미몽에서 깨어나 다음과 같은 통찰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정말로 이제 더 이상 옛날의 내가 아니며, 나는 이제 더 이상 고행자가 아니며, 나는 이제 더 이상 승려가 아니며, 나는 이제 더 이상 바라문이 아니다. 내가 집에 가서 아버님 곁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 모든 일은 다 지나간 일이고, 이 모든 일은 이제 더 이상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다.

꼼짝도 하지 않고 싯다르타는 서 있었는데, 숨 한 번 쉴 짧은 순간 동안,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자신이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를 알게 되었을때 그는, 마치 한 마리 작은 짐승이나 한 마리 새, 한 마리 토끼라도 된 듯, 가슴속의 심장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몇 해 동안 그는 고향 없이 떠도는 신세였지만 자신이 떠돌이라고 느끼지 못하였었다. 그런데 이제 그걸 느끼게 된 것이다. 속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침잠 상태에 빠져 있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아버지의 아들이었으며, 높은 신분의 바라문이었으며, 정신적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단지 깨달은 자 싯다르타에 불과하였으며 더 이상 그 밖에 다른 존재가 아니었다.

한순간 몸이 얼어붙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느 누구도 그만큼 외로운 사람이 없었다.

누구나 자기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공통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는 세상에서 가장 의지할 데 없는 숲속의 은둔자라 할지라도 혼자가 아니었으며 외롭지 않았다.

그런 운둔자도 같은 부류의 구성원들에게 에워싸여 있었으며, 그런 운둔자도 어떤 계층에 속하였으며, 그가 속한 계층이 그에게 고향이 되어주었다.

그렇지만 싯다르타 그는 어디에 속해 있을까? 그는 누구와 더불어 같은 생활을 할 것인가? 그는 누가 쓰는 언어와 같은 언어를 쓰게 될 것인가?

자기를 빙 둘러싼 주위의 세계가 녹아 없어져 자신으로부터 떠나 버리고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홀로 외롭게 서 있던 이 순간으로부터, 냉기와 절망이 이 순간으로부터 벗어나, 예전보다 자아를 더욱 단단하게 응집시킨 채, 싯다르타는 불쑥 일어났다.

이것이야 말로 깨달음의 마지막 전율, 탄생의 마지막 경련이었다.

이윽고 그는 다시 발걸음을 떼더니, 식속하고 성급하게 걷기 시작하였다.

이제 더 이상 집으로 가는 것도, 아버지한테 가는 것도, 되돌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싯다르타


2023.10.18 18:15

오래전부터 그는 그 자신의 자기가 바로 아트만이며, 범아일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 자기를 사색의 그물로 붙잡으려 하였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 자기라는 것을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육체도 자기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감각도 유희도 자기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색 또한 자기가 아니였고, 오성도, 배워서 얻은 지혜도, 결론을 끄집어내고 기존의 사상으로부터 새로운 사상을 실을 잣듯이 술술 만들어내는 습득된 재주도 자기가 아니었다.

그렇다, 이러한 사유의 세계도 역시 여전히 차안의 세계에 잇었던 것이며, 설령 감각이라는 우연한 비본질적인 자기를 죽이고 그 대신에 사고와 학식이라는 또 다른 우연한 비본질적인 자기를 제아무리 살찌운다 하더라도, 결국 어떠한 목표에도 다다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감각과 사유 두 가지 다 좋은 것이고, 배후에는 궁극적인 참뜻이 숨어 있었다.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도 경시되거나 과대평가되어서는 안되었으며, 그 두가지로부터 가장 내밀한 것의 비밀스러운 소리들을 들어야 할 것이었다.

#싯다르타


2023.10.18 17:49

나는 '인간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위하여 오랜 시간 노력하였지만 아직도 그 일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어.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오, 친구,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앎뿐이며, 그것은 도처에 있고, 그것은 아트만이고, 그것은 나의 내면과 자내의 내면, 그리고 모든 존재의 내면에 있는 것이지.

그래서 난 이렇게 믿기 시작하였네.

알려고 하는 의자와 배움보다 더 사악한 앎의 적은 없다고 말이야"

#싯다르타


2023.1.15 16:34

현재순간은 과거도 미래도 모르고, 이전도 이후도 모르며, 어제도 내일도 모르는 영원이다. 따라서 이런 현재순간으로 깊숙이 발을 내딛는 것이 곧 영원으로 뛰어드는 것이고, 거울을 통과해 불생불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지금 이 현재순간에는 시작이 없다. 시작이 없으니 불생이다. 아무리 찾아도 이 현재에 대한 경험의 '시작점'을 찾아내거나 느낄 수 없다.

동일한 이유로 지금 이 현재에는 끝이 없다. 끝이 없으니 불사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경험의 '종말'을 찾아내거나 느낄 수 없다.

이 현재에 시작이 있기는 할까? 어쩌면 이 현재는 시간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어서 애초부터 시간의 흐름에 속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겉으로는 폭포처럼 연속해서 빠르게 스쳐가는 듯 해도, 현재순간에는 우리가 배워온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파괴되지도, 오염되지도 않는다. 시작도 끝도 없으며 과거도 미래도 없다. 즉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영원이다.

설봉선사는 말한다. "영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은가?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서 영원을 알지 못하면, 수만번 다시 태어나더라도 그것을 얻지 못하리라."

#무경계


2023.1.15 16:19

나의 마음, 나의 몸, 나의 생각, 나의 욕망들은 나무, 별, 구름, 산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나'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것들을 객체로서 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탐구를 계속 진행해가면, '나'라고 하는 것이 점차 투명해지면서 고립되고 피부로 둘러싸인 이 유기체를 훨신 넘어선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탐구를 더 밀어붙이면, 의식 속에서 공중제비와도 같은 묘한 전환이 일어난다. 이런 반응을 능가경에서는 '의식 최심층부로의 전회'라고 부른다. 내가 절대적인 보는 자'를 찾으면 찾을수록, 그것을 하나의 대상으로서 발견해내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점이 더욱 명백해진다. 그것을 하나의 대상으로서 발견해낼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하게도 그것이 '모든 대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자'를 느낄 수 없는 것은 그것이 곧 '느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하는 자'를 경험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곧 '경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정한 나'를 찾아내기 위해 내면으로 들어갈 수록, 발견되는 것은 오직 '있는 그대로의 세계'뿐이다.

주체와 객체, 안쪽과 바깥쪽은 둘이 아니며 또한 언제나 비이원적이다. 거기엔 어떤 근원적인 경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가 곧 나의 몸이며, 보고 있는 내가 곧 보여지는 대상이다.

#무경계


2023.1.15 16:11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끈질기게 내면을 관찰함으로써, 나는 그것이 내면에서 발견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작은 주체'는 하나의 '객체'로 전락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은 주체'는 진정한 나, 진정한 주체가 아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나'를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고 지각할 수 있고 느낌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고 상상하고 있지 않은가?

이에 대해 신비가는 이렇게 응수한다. 내가 '나'를 지금 이 순간 볼 수 있고,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그 '나'가 전혀 '진정한 나'일 수 없다는 점을 결정적으로 말해주는 증거라고 말이다. 그것은 거짓된 나이며 환상이자 하나의 날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알 수 있는 '객체들'의 집합과 무심코 자신을 동일시해온 셈이다. 이처럼 '인식될 수 있는 대상'이 '인식하는 자', 곧 '진정한 나'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몸, 마음, 성격 등을 '진정한 나'라고 상상하면서 그것들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그러고는 그저 환상에 불과한 그것들을 방어하고, 보호하고, 연장시키려고 애쓰면서 전 생애를 소비해버린다.

#무경계


2023.1.15 16:02

지금 이 순간 '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정체는 언제나 지고의 본성임을 알게 된다. 언제나 현존하고 있는 무경계 자각의 빛 속에서는 한때 '내면의 고립된 나'라고 상상했던 그것이 저 밖의 우주와 하나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당신이다. 어디를 둘러보든 그 모든 곳에 당신의 본래면목만이 있을 뿐이다.

#무경계


2023.1.13 10:12

고통과 쾌락을 구분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고통으로부터 쾌락을 분리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빛, 위, 즐거움'과 같은 단어는 그 바깥에 적용되는 '어둠, 아래, 고통'과 같은 단어와 전적으로 단절되고 분리될 수 있기 때문에 일체성은 망각되고 십상이다.

"나는 즐거움을 원한다"는 문장을 예로 들어보자. 이 문장에는 즐거움의 필수적인 대극인 고통에 대한 언급이 없다. 현실세계는 어느 극도 상대극과 분리될 수 없지만, 단어로서의 즐거움과 고통은 서로 분리될 수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즐거움과 고통 사이의 선은 경계가 되고, 그 둘이 서로 별개라는 환상이 설득력을 얻는다.

우리는 대극이 그저 하나의 과정에 대한 두개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서로 투쟁하는 두 개의 다른 과정이 존재한다고 상상하게 된다. 이원성의 올가미 속에서 발버둥쳐야 하는 저주에 사로잡히며 하나뿐이어야만 하는 진실이 모순에 시달린다. 인간은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생각할 수 없게 된다.

'하나의 세계로부터 두 개의 세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 세계의 모든 신비전승에서는 대극의 환상을 꿰뚥어본 사람을 '해탈한 자'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는 '양극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양극의 싸움에 따르는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문제와 갈등으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평화를 찾기 위해 대극의 한쪽을 조작하지 않고 그 둘을 초월해 넘어간다. 선악 중의 어느 하나가 아니라 그 둘 다를 넘어선다. 그는 죽음에 대항하는 삶이 아니라 그 둘을 초월하는 자각의 중심이 된다.

#무경계


2023.1.13 09:58

옳음의 한 짝인 그름이 없는 옳음을 말하거나, 선정의 짝인 악정 없는 선정만을 말하는 것은 우주의 위대한 원리를 모르며 뭇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증거이다. 마찬가지로 땅의 존재 없이 하늘의 존재를 말하거나, 양 없는 음의 원리를 말하기도 하나, 그런 것은 분명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런 말을 되풀이한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바보 멍청이거나 무뢰함이 틀림없으리라. #장자

#무경계


2021.11.3 21:47

"죄인이 언젠가는 열반에 이르게 될 것이고, 부처가 될 거야. 그런데 이걸 알아두게. 이 '언젠가'라는 것은 착각이고 다만 비유에 불과한 것임을 말이야!

그 죄인은 불성으로 나아가고 있는 도중에 있는 것이 아니야. 그 죄인은 어떤 하나의 발전 과정 속에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야. 비록 우리의 사유라는 것이 만사를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고 달리 생각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지. 그 죄인의 내면에는 지금 그리고 오늘 이미 미래의 부처가 깃들여 있다, 바로 그런 이야기야. 그 죄인의 미래라는 것은 모두 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네.

자네는 그 죄인의 내면에 깃들여 있는, 자네의 내면에 깃들여 있는, 아니 모든 중생 개개인의 내면에 깃들여 있는, 바로 그 생성되고 있는 부처를, 바로 그 부처가 될 가능성을 지닌 부처를, 바로 그 숨어 있는 부처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되네. 고빈다, 이 세계는 불완전한 것도 아니며, 완성을 향하여 서서히 나아가는 도중에 있는 것도 아니네.

이 세계는 매 순간순간 완성된 상태에 있으며, 온갖 죄업은 이미 그 자체 내에 자비를 지니고 있으며, 젖먹이도 모두 자기 내면에 죽음을 지니고 있으며, 죽어가는 사람도 모두 자기 내면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아무도 다른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이 스스로의 인생행로에서 얼마만큼 나아간 경지에 있는가를 감히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는 없네.

도둑과 주사위 노름꾼의 내면에 부처가 깃들여 있고, 바라문의 내면에 도둑이 도사리고 있으니 말이야. 깊은 명상에 잠긴 상태에서는 시간을 지양할 수가 있으며, 과거에 존재하였던, 현재 존재하고 있는, 그리고 미래에 존재할 모든 생명을 동시적인 것으로 볼 수가 있어.

그러면 모든 것이 선하고, 모든 것이 완전하고, 모든 것이 바라문이야. 따라서 나에게는 존재하고 있는 것은 선하게 보이며, 나에게는 죽음이나 삶이 다 같게 보이며, 죄악이나 신성함이 똑같이, 지혜로움이나 어리석음이 똑같이 보여.

세상만사의 이치가 틀림없이 그러하며, 세상만사는 오로지 나의 동의, 오로지 나의 흔쾌한 응낙, 그리고 나의 선선한 양해만을 필요로 할 뿐이네. 이것은 나에게는 좋은 일이지. 나를 후원해 줄 뿐, 나에게 결코 해를 입힐 수는 없으니 말이야.

나는 나 자신의 육신의 경험과 나 자신의 영혼의 경험을 통하여 이 세상을 혐오하는 일을 그만두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더 이상 내가 소망하는 그 어떤 세상,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 어떤 세상,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해 낸 일종의 완벽한 상태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놔둔 채 그 세상 자체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고 기꺼이 그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내가 죄악을 매우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내가 관능적 쾌락, 재물에 대한 욕심, 허영심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수치스러운 절망 상태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싯다르타


2021.10.31 18:11

"나의 인생도 한 줄기 강물이었습니다. 소년 싯따르타는 장년 싯다르타와 노년 싯다르타로 부터 단지 그림자에 의하여 분리되어 있을 뿐, 진짜 현실에 의하여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싯다르타의 전생들도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었으며, 싯다르타의 죽음이나 범천에로의 회귀도 결코 미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현존하는 것이며, 모든 것을 본질과 현재를 지니고 있습니다."

싯다르타는 무아지경에 빠져 황홀한 상태로 말하였으니, 이러한 깨달음이 그를 그토록 기쁘게 하였던 것이다.

아, 일체의 번뇌의 근원이 시간 아니고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자신을 괴롭히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그 근원은 모두 시간 아니고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인간이 그 시간이라는 것을 극복하는 즉시, 인간이 그 시간이라는 것을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즉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힘겨운 일과 모든 적대감이 제거되고 극복되는 것이 아닌가?

#싯다르타


2024.02.19 18:02

아마 벌써 오래전부터 그는 자기 자신의 자기가 바로 아트만이며, 바라문과 똑같은 영원한 본질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사실, 즉 범아일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 자기를 사색의 그물로 붙잡으려 하였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 자기라는 것을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육체도 자기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감각의 유희도 자기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색 또한 자아가 아니었고, 오성도, 배워서 얻은 지혜도, 결론을 끄집어내고 기존의 사상으로 부터 새로운 사상을 실을 잣듯이 술술 만들어내는 그런 습득된 재주도 자기가 아니었다.

그렇다, 이러한 사유의 세계도 역시 여전히 차안의 세계에 있었던 것이며, 설령 감각이라는 우연한 비본질적인 자기를 죽이고 그 대신에 사고와 학식이라는 또 다른 우연한 비본질적인 자기를 제 아무리 살찌운다 하더라도, 결국 어떠한 목표에도 다다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오로지 그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이처럼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일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는 것, 그것은 좋은 일이었으며,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싯다르타


2021.10.31 17:11

'오'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쉬며 생각하였다.

'이제 다시는 나한테서 이 싯다르타가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지. 이제 다시는 나의 생각이나 생활을 아트만이나 세계고 따위로 시작하지 말아야지. 이제 다시는 나 자신을 죽이거나 산산조각 내어, 그 파편 뒤에 있는 비밀을 찾아내려고 하는 따위의 짓은 하지 말아야지. 이제 다시는 요가 베다의 가르침도, 아타르바 베다의 가르침도, 고행자의 가르침도, 그 어떤 가르침도 받지 말아야지. 나 자신한테서 배울 것이며, 나 자신의 제자가 될 것이며, 나 자신을, 싯다르타라는 비밀을 알아내야지.'

그는 마치 이 세상을 맨 처음 보기라도 한 것처럼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세상은 아름다웠으며, 이 세상은 오색찬란하였으며, 이 세상은 기기묘묘하고 수수께끼 같았다.

여기에는 파랑이 있었고, 여기에는 노랑이 있었고, 여기에는 초록이 있었으며, 하늘이 흘러가고 있었고, 강이 흐르고 있었으며, 숲이 우뚝 솟아 있었고, 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삼라만상이 아름다웠으며, 삼라만상이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었고 요술 같았다. 그 한가운데에 깨달음을 얻은 각자 싯다르타는 자기 자신에게로 나아가는 도중에 있었다.

이 모든 것, 이 모든 노랑과 파랑, 강과 숲이 맨 처음으로 눈을 통하여 싯다르타의 내면 속에 파고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은 이제 더 이상 마야의 요술도 아니었고, 이제 더 이상 마야의 베일도 아니었으며, 이제 더 이상 무의미하고 우연한 현상계의 다양성도 아니었다.

다양성을 무시하고 통일성을 추구하며 깊이 사색하는 바라문에게는 무의미하고 우연한 현상계라는 것은 경멸스러웠다. 파랑은 파랑이고, 강은 강이었으며, 비록 싯다르타의 내면에 있는 파랑과 강물 속에 하나이자 신적인 것이 숨어 있다 할지라도, 여기에 노랑, 여기에 파랑, 저기에 하늘, 저기에 숲, 그리고 여기에 싯다르타가 있다는 그 사실이야말로 바로 신적인 것의 본성이요 의의였던 것이다.

의의와 본질은 사물들의 배후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들 속에, 삼라만상 속에 있었던 것이다.

#싯다르타


2021.10.28 09:49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도울 수가 없어.
나도 도와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너는 네 자신을 잘 생각하고 정말로 너의 본질에서 솟아 나오는 것을 행동하면 되는 거야.

그 이외의 아무 방법도 없어.
네가 너 스스로를 발견하지 못하면 너는 어떤 영혼도 발견하지 못할 거야.

#데미안


2021.10.27 13:40

헤세가 말한 인간 형성의 3단계는 니체가 말한 정신변용의 3단계를 생각나게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첫 번째 단계는 낙타의 단계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걷는 동물이다. 우리는 낙타처럼 타인이 주는 짐을 아무 생각 없이 지고 간다. 우리의 윤리관이나 세계관, 가치관 등은 모두 주입된 것이다. 부모로부터든, 학교로부터든, 사회로부터든, 종교로부터이든지 간에 말이다. 그런 외부의 존재를 그는 '거대한 용'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은 언젠가는 스스로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낙타가 사자로 변하는 것이다.
그때 정신은 자유를 원한다.
사자가 되어 용과 싸우게 된다.
이 사자는 헤세가 말한 이상향 추구 단계와 신비주의 길에 들어선 첫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진정한 구도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자는 언젠가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처럼 신성한 긍정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거듭남의 길이며 신비주의 단계의 완성에 속한다.
3단계를 완성한 자를 헤세는 '성자'라고 불렀다.
니체의 '어린아이'가 바로 헤세가 말한 '성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데미안_보르세스와_함께_떠나는_카발라_여행 #차라투스트라는_이렇게_말했다


2021.10.27 13:36

마태복음 18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 다시 순진무구한 의식 상태를 회복하는 것, 이것이 바로 헤세가 말한 인간 형상의 3단계다.

#데미안_보르세스와_함께_떠나는_카발라_여행


2021.10.24 18:52

안개 속을 거닐면 참으로 이상하다.
덤불과 돌은 모두 외롭고
수목들도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다 혼자이다.

나의 생활이 아직도 밝던 때엔
세상은 친구로 가득하였다.
그러나, 지금 안개가 내리니
누구 한 사람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어쩔 수 없이
인간을 가만히 격리하는
어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정말 현명하다 할 수가 없다.

안개 속을 거닐면 참으로 이상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
사람들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이다.

#헤르만_헤세_시집


2021.10.24 18:34

마지막 인간은 '사랑은 무엇인가? 창조는 무엇인가? 동경은 무엇인가? 별은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서 눈을 깜박인다.

그러자 대지는 작아지고, 그 대지 위에는 모든 것을 작아지게 만드는 마지막 인간이 깡충거리며 뛰어다닌다.

마지막 인간들은 '우리는 행복을 발명했다.'라고 말하며 눈을 깜박인다.

그들은 살기 힘든 지역을 떠났다. 따뜻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웃을 사랑하며, 이웃과 서로 몸을 비비고 있다. 따뜻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병에 걸리거나 의심을 품는 것은 그들(마지막 인간)에게 죄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걸어 다닌다. 돌부리에 걸리거나 사람에 부딪쳐 비틀거리는 자는 바보다!

그들은 여전히 일한다. 일이 일종의 오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오락으로 몸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목자는 없고 한 무리의 가축 떼만 있을 뿐! 모두가 평등하기를 원하고, 모두가 평등하다. 자기가 다르다고 느끼는 자는 제 발로 정신병원으로 들어간다.

영리하며,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끝없이 조소한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 다투지만, 곧 화해한다. 그러지 않으면 위가 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대로 소소한 쾌락을 즐긴다. 하지만 건강은 소중히 여긴다.

마지막 인간들은 '우리는 행복을 발명했다.'라고 말하며 눈을 깜박인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_이렇게_말했다


2021.10.24 18:28

슬프구나! 인간이 동경의 화살을 더는 자신의 너머로 쏘지 못하고, 활시위를 윙윙거리며 울릴 줄도 모르는 그런 때가 오고 있다!

나는 그대들에게 말한다.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자신의 내면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대들에게 말하건대, 그대들은 내면에 아직 혼돈을 지니고 있다.

슬프구나! 인간이 더는 별을 낳지 못하는 때가 오고 있다!
슬프구나! 자기 자신을 더는 경멸할 줄 모르는 더없이 경멸스러운 인간의 시대가 오고 있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_이렇게_말했다


2021.10.24 18:23

나의 형제들이여, 나에게 말해다오. 그대들의 몸은 그대들의 영혼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는가? 그대들의 영혼 자체는 빈곤함이자 더러움이며 가련한 안락함이 아닌가?

진실로 인간은 더러운 강물이다. 더러워지지 않으면서 더러운 강물을 받아들이려면 우리는 먼저 바다가 되어야 한다.

보라,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친다. 초인은 바다이며, 그대들의 커다란 경멸은 그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수 있다.

그대들이 체험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위대한 경멸의 순간이다. 그대들의 행복,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대들의 이성과 그대들의 덕이 역겨워지는 순간이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_이렇게_말했다


2021.10.24 18:20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이다."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도중에 있는 것도 위험하며, 뒤를 돌아보는 것도 위험하고, 벌벌 떨거나 멈추어 서 있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내려가는 존재라는 데 있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_이렇게_말했다


2021.10.24 17:14

나는 그녀와의 결합이 새롭고 비유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꿈들을 꾸었다.
꿈 속에서 그녀는 바다였고, 나는 그 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또 그녀는 별이었는데, 나 자신도 하나의 별이었고 그녀에게로 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만났고, 서로 끌리는 것을 느끼고 나란히 머물다가, 윙윙 울리는 가까운 원을 그리며 환희에 차서 영원토록 서로의 주위를 돌았다.

다시 그녀를 찾아갔을 때, 나는 그녀에게 이 꿈 이야기를 했다.

"그 꿈, 아름답군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걸 실현시키세요!"

#데미안


2021.10.24 17:04

희망도 없이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영혼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고, 사랑에 모든 게 타 버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세상이 사라져 버렸다.

그는 더 이상 푸른 하늘도, 초록색 숲도 보지 않았다. 시냇물도 그에게는 졸졸거리지 않았고, 하프도 그에게는 울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고, 그는 가난하고 비참해졌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점점 커져갔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갖지 못하느니 차라리 죽어 없어져 버렸으면 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사랑이 그의 마음속에서 다른 모든 것을 불태워 버렸음을 감지했다. 그의 사랑은 막강해져서 끌어당기고 또 끌어당겼고, 그 아름다운 여인은 따라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왔고, 그는 그녀를 끌어안기 위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 와 섰을 때 그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깊은 전율을 느끼며 자기가 잃어버린 모든 세계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그의 앞에 서서 그에게 자신을 맡겨 왔다. 하늘과 숲과 시내, 모든 것이 새로운 빛깔로 신선하고 찬란하게 다가와 그의 것이 되었고, 그의 말로 속삭였다.

그리하여 그는 여인을 하나 얻는 대신 온 세계를 가슴에 지니게 되었다.

하늘의 모든 별이 그의 안에서 타올랐고, 그의 영혼을 꿇꼬 지나며 환희의 빛을 뿜어냈다.

그는 사랑을 했고,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하면서 자신을 잃어버린다.

#데미안


2021.10.24 16:26

사랑은 간청하는게 아니에요.
강요하는 것도 아니에요.

사랑은 그 안에 확신에 이르는 힘을 지녀야해요.
그러면 더 이상 끌려가는게 아니라 끌어당기지요.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게 끌리고 있어요.

언젠가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어당기면, 그러면 내가 가요.
나는 그 무엇도 선물로 주지는 않으렵니다.
나는 획득되기를 원해요.

#데미안


2021.10.24 16:18

스스로 믿지도 않는 소원에 자신을 맡기면 안 돼요.
나는 당신이 어떤 소원을 품고 있는지 알아요.

당신은 이 소원들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온전히 제대로 소망할 수 있어야만 해요.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당신이 마음속에서 온전히 믿고 빌 수 있으면 그 소원은 성취되는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소원하고, 그걸 다시 후회하고, 그러면서 두려워하지요.
그 모든 것이 극복되어야 해요.

#데미안


2021.10.22 09:58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사제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어.
우리가 그처럼 많은 예감을 가지고 있는 새로운 종교의 사제가 되고 싶었지.

나는 그럴 수 없을 거야.
그걸 알고 있어.
완전히 인정은 못한 채로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네.
나는 다른 사제 노릇을 하려고 해.
오르간 건반 위에서든,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하지만 나는 늘 아름답고 성스럽다고 느끼는 무언가에 둘러싸여 있어야 해.

오르간 음악이든, 비밀 의식이든, 상징과 신화든 간에.
나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고, 그것들을 떠나고 싶지 않네.
그게 내 약점이지.
나도 가끔 싱클레어, 그런 소망을 가져선 안 된다는 것, 그게 사치이고 약점이라는 걸 알아.
내가 만약 아무 요구 없이 아주 단순하게 운명에 몸을 맡긴다면, 그게 더 위대하고 더 옳은 일일 거야.

하지만 난 그렇게 할 수 없다네.
그게 내가 할 수 없는 유일한 일이지.
아마 자네는 언젠가 할 수 있을 거야.
그것은 어려워.
이보게, 그것은 세상에 단 하나 진짜로 어려운 일이라네.
나는 자주 그렇게 하는 꿈을 꾸었지만, 할 수는 없어.
두려워서 몸서리가 쳐져.
나는 그렇게 완전히 벌거벗은 채 외롭게 서 있을 수 없다네.
나 역시 약간의 따뜻함과 먹을 것을 필요로 하고, 가끔은 자신과 비슷한 동류들 곁에 있고 싶어 하는 한마리 가련하고 약한 개에 불과해.

정말 자신의 운명 이외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미 동류란 없어.
완전히 홀로 서 있고, 주위는 그저 차가운 우주 공간이 감싸고 있을 뿐이지.
자네 아나, 그게 바로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라네.
흔연히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교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영웅도 아니었고, 놓여난 것도 아니었어.
그들 또한 자기네들에게 친숙하고 다정한 무언가를 원했으니까.
그들에겐 모범이 있었고, 이상이 있었으니까.
이제 오로지 운명만을 원하는 사람, 그에게는 더 이상의 모범도 이상도 없고, 그 어떤 좋아하는 것도 위안이 되는 것도 없어!

그리고 사실 이 길을 가야 하는 걸 거야.
나나 자네 같은 사람들은 정말 고독하지.
그래도 우리는 아직 서로가 있고, 우린 남들과 다르다는, 반항한다는, 비범한 것을 원한다는 은밀한 만족감이 있어.

이 또한 떨쳐 버려야 해!
그 길을 온전히 가고자 한다면 말이야.
혁명가가 되려 해서도 안 되고, 모범이 되려 해서도 안 되며, 순교자가 되려 해서도 안돼. 그 길은 예측이 불가능하니까.

#데미안


2021.10.21 10:03

"나 역시 머릿속을 스쳐 간 모든 생각들을 무조건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말은 아닐세. 그건 아니야.
다만 자네 마음에 떠오른, 그 자체로 좋은 의미를 지는 어떤 생각을 몰아낸다거나 그것에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망쳐 버려선 안 된다는 말이지.

자신의 충동과 유혹을 존경과 사랑으로 대처할 수 있다네.
그러면 그것들이 제 의미를 드러내지.
그것들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으니까.

다시 한번 정말로 미친 생각이나 죄 많은 생각이 떠오르거든, 싱클레어, 혹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거나 대단히 외설적인 어떤 짓을 하고 싶어지거든, 그렇게 자네 속에서 공상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브락사스라는 것을 잠시 생각하게!

자네가 죽이고 싶어 하는 인간은 결코 실재하는 아무개씨가 아니라 하나의 위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야.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우린 그 누군가의 모습에서 바로 우리 내면에 들어앉아 있는 무엇인가를 미워하는 거야.
우리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은 우리를 흥분시키지 못하거든."

"우리가 보는 것들은, 바로 우리 내면에 있는 것과 똑같은 것들이지. 우리가 내면에 지니고 있는 것 이외의 현실이란 없어.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처럼 비현실적으로 사는 거지.
바깥에 있는 것들을 현실이라 여기고 자기 안에 있는 그들 본연의 세계는 입도 뻥끗 못하게 하니까.
뭐 그러면서도 행복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일단 다른 것을 알게 되면(아브락사스), 그 다음엔 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선택할 여지는 없어.
싱클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은 쉽고, 우리가 가는 길은 어렵다네.
우리 그 길을 가보세."

#데미안


2021.10.21 09:52

음악은 도덕적이지 않아서, 그래서 좋아한다고. 이의는 없네.
그러나 바로 자네 자신이 도덕주의자가 아니어야 해! 자신을 남과 비교하면 안된다는 말이야.
자연이 자네를 박쥐로 만들어 놓았다면, 자신을 타조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돼.
자넨 걸핏하면 자기가 이상하다 생각하고,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간다고 자책하지.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해.

불을 들여다보게. 구름을 바라봐.
그러다가 예감이 떠오르고 자네 영혼 속의 목소리들이 말하기 시작하거든, 거기에 자신을 맡기고, 그게 선생님이나 아버지나 그 어떤 신의 뜻에 맞는지, 그들 마음에 들겠는지 그런 것 부터 묻지 마!
그걸 묻는 바람에 다들 자신을 망치고 말지.
그걸 물어서 인도(人道)로 올라서 걷고, 구태의연한 인간이 되어 버리는 거야.

이봐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아브락사스라 하고, 신이면서 동시에 악마이고, 자기 안에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지니고 있어.
아브락사스는 자네의 어떤 생각에도 반대하지 않고, 자네의 어떤 꿈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그걸 잊지 말게.
그러나 자네가 언제고 흠잡을 데 없이 정상적인 사람이 되면, 아브락사스가 자네를 떠나. 자네를 떠나서 자신의 사상을 담아 요리할 새 그릇을 찾는 거지.

#데미안


2021.10.21 09:44

피스토리우스: "우리는 개인의 경계를 늘 너무 좁게 그어 버리곤 하지!
언제나 우리가 개인적이라고 구분해 놓은 것, 남과 다르다고 인식하는 것만 개인으로 치지.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전체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 우리 몸이 어류나 그 훨신 이전의 생물체에까지 이르는 진화의 계보를 지니고 있듯이, 일찍이 인간의 영혼들 속에 살았던 모든 것을 우리 영혼 속에 가지고 있지.
이제까지 존재했던 모든 신과 악마는, 그것이 그리스인들에게 있었건, 중국인들에게 있었건, 아프리카 토인들에게 있었건 간에 모두 우리 안에 함께 있소.
가능성으로, 소망으로, 탈출구로 거기 있는 거요.
전혀 교육받지 못한 평범한 아이 하나만을 남기고 인류가 멸망해 버린다 해도, 그 아이는 사물의 모든 과정을 다시 찾아낼 거요.
신들, 악마들, 낙원, 계율과 금기, 구약과 신약, 모든 것을 그 애는 다시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싱클레어: "그렇다면 개인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겁니까?
우리 내면에 모든 것을 이미 완성된 상태로 가지고 있다면, 왜 우리는 아직도 노력하는 겁니까?"

피스토리우스: "세계를 그저 자기 안에 지니고 있느냐 아니면 그 사실을 알고 있느냐, 그건 큰 차이지!

어떤 미친 사람이 플라톤을 연상시키는 생각을 내놓을 수도 있고, 헤른후트파 학교에 다니는 경건한 어린 학생이 그노시스파나 조로아스터파에 나타나는 심오한 신화적 연관을 독창적으로 숙고해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들은 자기 안에 세계가 있다는 걸 몰라! 그것을 모르는 한 그는 한 그루 나무나 돌인 거지.
기껏해야 동물이고. 그러나 이 인식의 최초의 빛이 희미하게 동터 올 때, 그때 그는 인간이 되는 거요.
당신도 아마 저기 거리에 걸어 다니는 두 발 달린 족속들을 단지 직립 보행을 하며 자식을 열 달 배 속에 넣고 다닌다는 것만으로 모두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그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가 물고기나 양, 벌레나 거머리인 줄은 당신도 알고 있을 거요.
얼마나 많은 부류가 개미인지, 얼마나 많은 부류가 벌인지! 자, 그들 하나하나 속에 인간이 될 가능성들이 부여되어 있지.

하지만 각자 그것을 예감할 때,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을 의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배울 때에야 그 가능성들은 비로소 그의 것이 되는 거요."

#데미안


2021.10.20 22:23

나는 내가 바로 이 예감의 꿈속에 아브락사스를 불러냈다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환희와 두려움, 남자와 여자가 뒤섞이고, 깊은 최악이 천진난만함을 관통하며 가장 성스러운 것과 추악한 것이 서로 뒤얽혔으니, 그것이 내가 꾼 사랑의 꿈의 이미지였고, 아브락사스 또한 그러했다.

사랑은 더 이상 내가 처음에 잔뜩 겁내며 느꼈던 것처럼 동물적인 어두운 충동이 아니었다.
그리고 더 이상 내가 베아트리체의 이미지에 바쳤던 것 같은 경건하게 정신화된 숭배도 아니었다.

사랑은 그 둘 다였다.
둘 다이면서 또 훨씬 그 이상이었다.
사랑은 천사의 모습이자 악마였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였으며, 인간이자 동물이고, 지고의 선이자 극단적인 악이었다.
이것을 살아 내는 일이 내게 주어진 운명이요,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 내 숙명인 듯했다.
나는 그 운명을 열망하면서도 그 앞에서 두려워했다.
하지만 운명은 늘 거기 있었고, 늘 내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데미안


2021.10.20 13:51

"선함, 고귀함, 아버지다움, 아름답고 드높은 것, 감상적인 것이지. 아주 옳아!
그러나 세계는 다른 것으로도 이루어져 있어. 한데 그 다른 것은 이제 모두 악마한테 떠넘겨지고, 세계의 온전한 일부분, 이 온전한 반쪽은 감춰지고 묵살되는 거야.

신을 모든 생명의 아버지라고 찬양하면서, 모든 생명의 근원인 성생활은 완전히 묵살한 채, 악마적 소행이나 죄악이라고 해 버리잖아!

나는 사람들이 이 여호와 신을 숭상하는 것에 전혀 조금도 반대하지 않아.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숭상하고 신성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해. 인위적으로 분리된 공식적인 반쪽만이 아니라 전체 세계를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신에 대한 예배와 더불어 악마에 대한 예배도 해야 해. 그게 옳은 것 같아.
아니면 악마를 자신 안에 품고 있어, 지극히 자연스러운 세상일들이 일어날 때 그 앞에선 눈을 감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신을 만들어내야 할 거야."

...

"생각이란, 우리가 그대로 살아 내는 것만 가치 있는 거야. 너의 '허락된 세계'는 세계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걸 넌 알았어.

그런데 신부님이나 선생님들이 하듯 두 번째 절반을 감추려고 했지.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될 거야!
한번 생각이라는 걸 시작하면 누구도 그렇게 못해!"

...

"'허락되었다'거나 '금지되었다'는 것이 원래 무엇을 뜻하는지 통찰할 수 있는 곳까지 넌 아직 가보지 못했어.

우리는 각자 스스로 찾아 내야 해.
무엇이 허락되고 무엇이 금지되어 있는지를 자기에게 금지된 것은 무엇인지를 말이야.
사람은 금지된 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도 아주 나쁜 인간일 수 있어. 정반대일 수도 있고.

실제로 그건 그저 편안함의 문제란 얘기야!
너무 안일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주체적 판단을 하기 힘든 사람들은 기존의 금지들에 그대로 순응해 버리지. 그게 쉬우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기 내면에서 금지를 느껴. 그들에게는 다른 명예로운 사람이 일상으로 하는 일들이 금지되고, 보통은 금지되는 다른 일들이 허락돼.
그건 각자 알아서 판단해야 해."

#데미안


2021.10.20 13:37

"우리 인간은 물론 동물보다 활동 범위도 넓고,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도 많지.
하지만 우리 역시 꽤나 좁은 범위 안에 매여 있고, 그걸 벗어날 수 없어. 내가 이런저런 것을 상상할 수는 있겠지.
무조건 북극에 가고 싶다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한 것을 말이야.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거나 충분히 강력하게 원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 소망이 완전히 나 자신 안에 있을 때, 실제로 내 존재가 완전히 그 소원으로 꽉 차 있을 때 뿐이야.
그렇게만 되면, 너의 내면으로부터 요구되는 것을 실행하자마자 잘될 거야."

#데미안


2021.10.18 14:18

"싱클레어, 우리의 신 이름은 아브락사스네.
선과 악을 모두 내면의 품고 있는 아브락사스는 자네의 어떤 생각에 대해서도, 어떤 생각에 대해서도, 어떤 꿈에 대해서도 전혀 반감을 갖지 않아.
그걸 잊지 말게.

나는 자네만한 나이 때에 사랑의 꿈(성욕)을 지나치게 억눌러 버림으로써 많은 것을 잃어버렸네.
우리는 그래서는 안되네.
우리가 아브락사스를 안 이상 그렇게 해서는 안되네.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우리는 자신의 유혹이나 본능을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다룰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그것들은 모두 의미를 가지게 될 걸세.

자네한테 다시 죄악이 넘치는 생각이 떠오른다면 싱클레어, 그것은 자네 내면에서 아브락사스가 환상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게!"

#데미안


2021.10.18 14:12

피스토리우스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 말고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끗히 인정한다.

깨달은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고, 자기 자신의 길을, 그것이 어디로 가는 길이든 따지지 않고 더듬어 전진하는 한 가지 일 밖에는 아무런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진정한 사명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는 것뿐이다.

피스토리우스는 외부의 스승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내면의 스승을 나타내는 데미안과는 다르다.
따라서 싱클레어가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도록(새가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기는 했지만 궁극적으로 싱클레어가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도록 지시하는 것 말고 더 이상 도와줄 수 없었던 것이다.

#데미안 #데미안_보르세스와_함께_떠나는_카발라_여행


2021.10.18 14:05

심연이란 다름 아닌 공허, 아인 소프를 일컫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아인 소프로부터 투척된 불꽃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의 목적은 결국 자기 자신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표상하는 새는 알을 깨고 나와 아브락사스(아인 소프의 상징)라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데미안 #데미안_보르세스와_함께_떠나는_카발라_여행


2021.10.18 14:12

"우리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불안을 가질 필요가 없어. 만약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 사람에게 자신을 지배할 힘을 넘겨줬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거야."

#데미안


2021.10.18 14:01

우리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색해야 할 때가 분명히 있다.
그때 우리는 생각의 기능을 활용한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그런 사색에 빠져야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런 경우에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생각을 쉬는 것이) 정상 아닐까.

그런데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온갖 생각들이 하염없이 꾸역꾸역 일어나곤 한다.
더욱 기막힌 것은 우리가 생각과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과거에 어떤 화나는 일이 있었다고 하자.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로, 지금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 생각이 떠오르면 새삼스럽게 다시 화가 치솟는다.
그것은 생각과 자신을 동일시한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작은 예에 불과하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흐른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생각에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미쳤다는 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생각을 현실(실제)로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정신병자라 할 수 있다.

#데미안 #데미안_보르세스와_함께_떠나는_카발라_여행


2021.10.18 13:54

우리는 모두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같은 뿌리의 존재이며 모두가 동일한 심연에서 유래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심연으로부터 던져진 시도인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목표를 향해 노력한다.

인간의 삶이란 자기 자신에 도달하기 위한 길이며 그러한 길을 찾아내려는 시도이자 암시이다.

#데미안 #데미안_보르세스와_함께_떠나는_카발라_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