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흔히 선과 악, 쾌락과 고통, 우리는 늘 양극성을 창조하며 그 중 우리가 '좋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한다.
사회를 보면 양극성의 세상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자본이 곧 '좋음'의 기준이 되고 모두가 자본을 쫒아가는 챗바퀴 속에 사회는 돌아가고 있다.
그것은 특정한 방향성에 지나지 않는다.
선과 악, 그 기준은 무엇인가.
미개해 보이는 여러 나라들의 풍습은 우리의 문화로 비추어 보면 악이며 그럴때 우리는 본인의 선과 악을 잣대로 세상을 판단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주관적이며 내가 보는 모든 것은 나의 환상을 투영한 것에 불과하다. (이 문장은 굉장히 유용한 도구가 되어 줄 터이다.)
선과 악은 그저 우리가 그 경계를 학습한 것에 지나지 않다. 그 어느 것도 절대적인 기준치가 없으며 우리 스스로가 그 경계를 만들었을 뿐이다.
그 경계를 짓는 순간 우리는 크나큰 오류에 빠진다.
경계의 한쪽 면을 추구한 나머지 반대쪽 면과는 영원한 전쟁이 펼쳐진다.
밤 하늘의 별이 되려고 하면 별을 감싸는 모든 암흑이 내 적이 된다.
고통 없는 쾌락은 없고, 죽음 없는 삶은 없다. 우리는 우리가 그은 가상의 경계에 의한 전쟁터를 창조하였다.
그 경계는 '좋음'과 '나쁨'의 이원성이며 좋음을 추구해야 내가 더 나아진다는 오류에 빠진다. 그로 인해 스스로를 관념에 가둠으로써 고통과 쾌락은 사실 하나이며, 삶과 죽음도 하나라는 사실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자연을 보면 선과 악은 없어 보인다. 크고 작다도 없으며 좋고 나쁨도 없다. 그저 그런 구분이 필요 없다. 이원론적 사고를 파악하고 하나 둘 놓아버리면 내면의 전쟁터가 서서히 사라지며 평화가 온다. 그저 있음과 없음의 혼연의 근원. 그 완전한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질 따름이다.
경계를 나누고 구분을 함으로써 관념이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었으며. 그 감옥의 시작은 '나'와 '나 아님'의 경계이다.
그 마지막 경계에 대한 허상이 사라질 때 ...
2021.06.20
일시적으로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나는 사라진다. 사라졌지만 존재한다. 그 모순이 나에게 자그만한 불씨를 피운다. "거 봐, 넌 사라졌지만 존재해" 조금씩 신뢰가 쌓이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