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 러닝

산만함, 선택하면 축복

시간이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담아내는 주머니라고 한다면, 나는 주머니가 자꾸만 터지곤 했다.
그 막이 극도록 얇은 문제까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평생 제시간에 출근하는 직장에는 가지 못하겠구나 했다.
주머니 안에 남보다 더 많은 구슬을 욱여넣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도 알았다.
그 주머니가 그냥 터진 것인지 내가 터트린 것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시간의 덕을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지점에서 욕망의 약점도 나왔다.

생산성을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 시간이라는 주머니가 자꾸 찢어진다면 크게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 주머니를 꽤맨다. - 시간을 더욱 철저히 관리한다.
  2. 들어가는 구슬의 개수를 줄인다. - 선택과 집중으로 할 일을 줄인다.
    그러나 나는 진작부터 전자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후자는 죽기보다 싫었다.
    게다가 나는 그다지 나를 바꾸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있으나 마나 하게 얇게 존재하면서 은근히 신경 쓰이게 만드는 주머니를 집어서 버리기로 했다.
    시간이 경계를 지어주는 힘이 약하다면 그 힘을 키우는데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그냥 살았다는 뜻이다.
    여러가지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주는 시간의 안전한 한계 안에 담겨 있으려는 노력은 집어치웠다.

돈이 많아서 좋은 건 어느 수준 이후로는 소비 보다도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돈으로 결국 시간을 사게 된다면 처음부터 시간을 마음대로 쓰는 법을 안아내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시간을 펑펑 써보았다는 말이다.
하루 단위로 해야 하는 일정을 별도로 정하지 않았다.
시간을 쓰고 싶은 사건이 생기면 몰두했고, 몰입이 끝날 때까지 시간을 썼다.
새로운 사건이 끼어들면 그 중심으로 일상을 조직했다.
시간대를 정할 수 있는 일을 골라서 하고, 시간에 따라 보수를 받는 성격의 일을 절대로 피했다.
되도록 집에서 일을 하거나, 완수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줄이려면 줄일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무언가에 몰두하느라 시간이 흘러가는 걸 아까워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삶은 유한하지만 이렇게 계속 산다면 삶이 끝나기 직전까지 무한한 시간 속에 살았던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단순한 생각은 맞았다.
기왕 삶이 유한한 시간의 단위라면, 그 이상으로 분절하거나 의식하지 않으니 시간을 쉽게 대했고, 자원을 확보하는 생산성도 결과적으로 늘었다.


그러다 이도 저도 안 될까봐

사람들의 고민을 가만히 들어보면 행동 패턴이 다음과 같다.

  1. 한순간에 해야 하는 여러 가지 과업을 한 번에 떠올린다.
  2. 그 과업에 대해 마음이 무거워진다.
  3. 결과가 실패이거나 끝까지 완수하지 못하게 되는 결말을 걱정한다.
  4. 그 탓을 자신이 과업을 여럿으로 설정했기 때문으로 돌린다.
  5. 그 가운데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히면서 고민한다.
  6. 무거운 마음을 유지하고 잠든다.
    이는 특정한 행동이라기보다, 행동하기 어렵게 만드는 공포 반응에 가깝다.
    산만한 성향을 고치려고 한 적도, 충동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은 적도 없으면서도 특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압력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던 시기가 있었다.

원인은 모순적인 통념에 우리가 스스로를 가두고 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모순적인 생각들에 의해 불안을 불러오고 아무것도 제대로 못한다. 위의 통념들은 실현 불가능한 저주와도 같다.
움직임을 두렵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딜레마다.
모든 문제를 이분법적 구도에 가두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여김으로써 없던 딜레마가 생겨나는 현상이다.


여러 가지는 하나 다음이 아니다

여러가지는 하나를 먼저 제대로 해야 한다는 암묵적 규칙 덕에 한심한 사람 취급을 당한다.
이것저것을 다 잘하고 싶은 이들을 억압하는 것은 자신의 비현실적 욕심이라기 보단, 그들의 현실을 비현실 혹은 과욕이라고 부르는 외부의 잣대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원하던 대로 이것저것 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경험한 현실은 복잡했다.
이도저도 아닌 것들을 여러 개 가진 덕에 하나만 들고 팔때 보다 생산성의 총합이 높은 사람
한 우물만 파는데도 그다지 뾰족한 수가 없는 사람
이도 저도 아닌 것들 가운데 제법 괜찮은 성과를 낸 몇 가지를 추려내어 얼추 잘 살고 있는 사람
여러 가지를 쫒고 성과를 낼 수 있지만 저글링 기술이 부족한 사람
등 세상에 존재하는 경우의 수는 절대로 이분법에 다 가둘 수 없다.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다수 vs 완벽한 하나' 라는 가정은 허구다. 이 허상은 구도의 산물이다.
역량이라는 몸집을 키울 필요가 있다면 관심을 가진 여러 영역의 역량을 종합하면 그만이다.
모으는 대신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도 투자의 일종이듯, 분산투자도 투자의 방식이다.

여러 가지를 건드리는 사람은 천재이거나 무능한 멍청이라는 통념은 강박을 강화할 뿐이다.
이것저것 알아보고 해보고 싶은 사람들의 삶은, 그 욕심을 그만 내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으로 단순하지 않다.
그 반대 방식인 하나만 파고드는 삶을 영위하는 게 힘들 확률이 더 높다.
그런 이들에게 강박을 강화하면서 수치를 주거나, 죄책감을 주면 성취가 대단해지기는 커녕 문제 혹은 강점, 재능을 발전시킬 여지를 적극적으로 없앨 뿐이다.

그러니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편이 좋다.
마음이 무겁다보면 가벼운 마음이 곧 비생산적인 시간을 살아가는 증거같이 여겨진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놓고 마음이 무거울 수록 하루를 잘 살았다고 무의식 중에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잘못된 건 가벼운 마음이 아니라 그 마음을 대하는 방식이다.
생산성이 최고의 가치여서가 아니다.
생산성을 원한다고 말은 하면서 몸은 무거운 마음에 깔려 누운 자리를 익숙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벼워야 생산성을 낼 수 있는데, 그런 순간이 막상 찾아오면 거부한다.
그리고 생산성에 대해 생각한다.
하지만 몸집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조건 가벼워져야 한다.

나는 시간 관리를 하지 않는다.
하루 안에서 필요에 의하지 않은 일정은 만들지 않는다.
이걸 해야 하는데, 하면서 미리 정해진 과업에 대해 생각하면서 드는 시간과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면 일에 착수하는데 드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
목록을 적지 않았으니 다 해내지 못한 과업의 리스트들을 마주하며 마음이 무거울 일이 없다.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으나 하지 못한 일에 대해 반성하고 자학 하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게 된다.
하지 못한 일이 있었던 까닭은 하루 중 중요한 다른 일을 하느라 시간을 이미 썼기 때문일 것이므로 그 다음 날 한다.


취미의 어원은 순수한 사랑

취미를 뜻하는 아마추어의 어원은 어설픔이나 맛보기가 아니다. 순수한 사랑이다.
흥미로 시작한 사람들도 성과에 대한 즉각적인 압박이 없을지언정, 몇 년째 수준이 제자리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주변인이 하나를 골라서 제대로 하라면서 만류 하지만, 내버려두어도 자꾸 이끌리고 사랑하는 것을 두고 다른 걸 잘하기 위해 억지로 에너지를 끌어다 쓰는게 더 무모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취미로 배운다면 오히려 잘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완벽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도, 그래야 성취가 더 잘 나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즐길 수가 없다.
스키 선수가 될 생각이 없어도 스키를 탈 때마다 넘어지기만 한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무엇을 하던 중급자 정도의 실력이 되어야 제대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게릴라 러닝이 추구하는 '즉흥성'이라는 말에는 '즉시 실행한다'는 뜻 외에도 '흥취' 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 순간 일어나는 흥취를 높이며 실력을 수월하게 끌어올린다면, 순수한 사랑에서 비롯된 배움에서 자원을 얻기가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