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제 타프티


메타력

그저 프레임을 비추기만 하면 그 프레임은 스스로 실현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내가 해야하는 것은 그저 비추고, 관찰자처럼 뒤로 물러나서 방해하지말고 걸리적거리지 말아라!

물리적인 힘, 의지력은 현재의 프레임에서만 작동한다. 다가오는 현실에는 통하지 않는다.

메타력은 현실의 반대편에 존재하고 있는 힘이다.

거울을 보아라.

거울은 물질이며 만질 수 있지만, 거울에 비친 세상은 실재로 존재하지만 결코 만질 수 없는 형상이다.

거울에 비치는 그림자도 존재한다.

만질 수 있는 것 만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 거울은 형상과 그림자의 위치가 서로 바뀌어있다.

그림자는 만질 수 있지만 형상은 만질 수 없다. (형상으로 부터 그림자가 나온다. )

그림자는 거울 면에 있다. 거울은 물질 세계고 그 건너편(거울 속의 형상의 세계)에는 꿈의 세계, 필름 보관소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그림자는 형상(원형)으로 부터 나온 것을 이며, 거울은 그 그림자를 드러냄으로써 거울이라는 물질 세계에 해당 상을 구현하게 됨. 형상이라는 무수한 가능태를 품고 있는 근원으로 부터 결정된 형태를 그림자라고 하고, 그 그림자의 순간(프레임)이 물질 세계에 구현됨.

물질 세계는 필름을 따라 움직이는 프레임이다. (유튜브에서 1:30초에서 멈춘다면, 현재 보이는 그 현재를 드러내는게 바로 프레임이다.) 하지만 필름은 일차적(프레임이 비추고 있는 정해져 있는 시나리오)이고, 영화는 이차적(무수한 시나리오의 가능태가 있는 하나의 장)이기에 실재는 거울 너머 어딘가에 있는 형상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네가 아무리 거울 면에 힘을 써봤자, 열심히 다해 거울을 깨트리려고 두드려봤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형상의 세계(거울 속)로 가서 그 세계의 법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근데 그 형상의 세계로는 어떻게 갈까?

너희가 잠에서 깨어나 시나리오에서 분리 되었을때 이미 형상의 세계로 갔다. 현실의 거울 표면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물의 표면이나 벽하고는 완전히 달라서, 그것을 선명하게 본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그리고 형상과 그림자 사이를 구분하는 경계를 만지는 것도 불가능하다.

거울의 양쪽에 있는 모든 것은 완전히 똑같은 모습이다. 다만 한쪽 세계는 물질적이고, 한쪽 세계는 비물질적일 뿐이다. 거울 안엔 물질적 마네킹이 있고, 거울 밖엔 비물질적 마네킹이 있다. 잠에서 깨어나면 나의 주의는 거울의 경계를 넘어 비물질적 마네킹에 들어간다.

즉 옮겨가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주의지만, 주의가 곧 나 자신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가상적 마네킹과 물질적 마네킹 중 하나만 움직여도 따라 움직인다. 다만 차이는 물질적 마네킹을 움직인다면 완전히 시나리오에 얽메인다. 하지만 반대편인 형상의 마네킹을 움직인다면 자신은 물론 다가오는 현실도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다.

현실을 통제하는 것은 주의와 의도와 메타력을 사용해야 한다.

연극 흉내내기

생시에서는 거울의 양쪽 면에 똑같은 모습의 물질계와 비물질계가 있다.

꿈속에서는 서로 대칭이지 않다. 물질계는 그 자리에 있어도 주의는 다른 세계로 멀리 날아가버린다.

또 다른 차이점은 꿈속에서는 시나리오에 한층 더 깊게 연결되는데 반해, 생시에서는 정신을 차릴 때면(깨어남) 시나리오에서 분리된다.

물질계는 형상이 구현된 것(이미 일어난 것)이 더 정확하다. 구현된 프레임은 거울 면을 통해 어떻게든 고칠 수 있지만, 다가오는 현실은 형상뿐이다. 형상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형상을 담은 프레임, 즉 그 형상이 있는 거울 반대편에서만 가능하다.

고치는 것은 이쪽 면에서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통제는 건너편에서만 가능하다.

형상계에서는 사물이나 공간이 없으니 힘을 가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느냐. 그러니 이곳에서는 힘이 작용하지만 거울 반대편에는 메타력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쪽은 연극이며, 저쪽은 흉내 낸 연극이지.

내가 의식의 중심으로 들어가 순식간에 거울의 반대편으로 갔다고 상상해보아라. 내 주변의 사람들은 전부 예전과 다름없을 것이다. 내가 거울 너머 사건을 보고 있다는 것이 전혀 믿기지 않을 테지. 하지만 나는 그곳에 존재하면서 현실을 선택하는, 즉 영화 필름을 선택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내가 존재하는 필름을 바꾸지 않고, 그 안의 연극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으면서 너희가 필요로 하는 필름을 선택하는 것이다. 알겠느냐?

여전히 시나리오에 쓰인 역할을 연기하고 있으며, 일상에서 주어진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등장인물들과는 다르게 의식 상태에 있기 때문에 더 큰 것을 얻는다. 필름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사건의 한켠으로 슬쩍 비켜나 그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존재가 되었지. 또 규칙을 전부 지켜서 아무도 너희가 한 행동을 눈치채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흉내 내기 게임은 그런 것이다. 너희는 살아난 등장임물임에도, 생명이 없는 체하며 영화 속을 거닐게 되었으며 너희의 의지대로 필름을 바꿀 수 있다. 그 누구도 나를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시나리오도, 등장인물도.

하지만 시나리오에서 완전히 도망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저 현실을 선택하면서 새로운 시나리오를 시작할 뿐이다. 새로운 시나리오 역시 나의 것이 아니며, 나는 새 시나리오 영향력 안에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대신 그 시나리오는 나를 원하는 결과로 안내해줄 것이다.

튀고 싶어도 뽐내지 않을 것을 추천한다. 중세 시대에 그런 자들은 화형이였으며, 현대에는 정신병원에 간다. 잠들어 있는(극중 속 캐릭터)들을 깨우지 말고 나의 현존을 나타내지 마라.

현존하기

나는 이쪽에 있으면서 동시에 저쪽에도 있을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부재(무의식)하는 상태가 되어 완전히 시나리오의 지배를 받게 된다.

꿈을 꿀 때면 비물질적 현실만 움직일 수 있다. 그 상태에서 물질계에 영향을 가하긴 어렵다. (할 수는 있겠지만!)

생시에 현존의 상태에서는 나는 곧 실재가 될, 다가오는 현실를 선택하는 능력을 얻게 된다. (현실을 선택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고 꼭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똑똑히 이해시키기 위해서 이 말을 몇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것을 알겠느냐?)

알아야하는 것이 또 하나가 있다.

현실을 선택하는 것은 일련의 사건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목표인 '다가오는 프레임'만을 정하는 것이다.

현실을 선택하는 것은 시나리오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필름을 선택하는 것이다. 시나리오는 너희의 영향력 안에 있지 않다. 너희가 목표에 접근하기 위해 시나리오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 권리도 너희에게는 없다. 너희는 그저 영사기로써 작동할 뿐이다.

너희의 영사기에 목표 프레임이 비치면 사건의 경과는 자동으로 그쪽 방향을 전환할 것이다.

영화 필름을 고르면 새로운 시나리오를 시작하게 되지만, 그 시나리오는 너희의 소유가 아니며 그 안의 내용도 너희 모르게 쓰인 것이다. 너희가 가질 수 있는 건 오직 목표 프레임뿐이다. 목표 프레임이 선택되면 필름은 자연스레 그것이 있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 그저 계속해서 프레임을 비추거라. 그렇게 하면 너희는 지금 필름에서 다른 필름으로 건너가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최종 목적지에 다다를 것이다.

너희가 세워둔 목표가 얼마나 복잡한지에 따라 빠르게, 또는 느리게 실현될 것이며 너희조차도 눈치채지 못 할 것이다. '갈 길이 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너희의 과제는 목표 프레임에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시나리오는 너희 생각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시나리오를 선택하거나 거스르려고 한다면 그것은 너희를 덫으로 옭아맬 것이다. 사건의 경과에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한다면 현재 프레임에 꽉 잡혀 옴짝달싹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등장인물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그건 심지어 천하디 천한 짓이다. 결국엔 예상치 못한 결과나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지. 등장인물 역시 각자의 시나리오대로 행동한다. 절대 그러지 말아라.

다만 그들이 너희에게 달려들어 스스로 알아서 너희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하려고 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려주겠다. (아 도대체 뭔데!)

유용함

시나리오는 너희의 것이 아니다. 시나리오를 직접 새로 만들어냈다고 해도, 절대 너희의 것이 될 수 없다. 시나리오를 바꾸려 하고 거스르려 한다면 시나리오는 너희를 덫에 빠트릴 것이다. 저항하면 저항할 수록 더 강하게 옭아매지.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너희가 자발적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놓아줘야 한다.

시나리오는 누군가의 주관적인 의미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로 도망칠 수 없는 객관적 현실이다.

너희가 목표를 정하기만 하면 시나리오는 너희의 목표를 향해 움직일 것이다.

너희가 현실을 선택한다면, 그 현실이 부적절한 것일지라도 시나리오는 너희의 선택에 일치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너희가 해야할 일은 목표 프레임을 꾸준히 비추는 것 밖에 없다. 하지만 너희는 모든 것이 너희의 계획에 꼭 맞길 원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망쳐버리지. 그래서 너희가 생각한 것이 실현되지 않는 것이다.

현실을 선택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사건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낟고 하더라도 시나리오는 너희에게 해를 입히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그저 에너지만 낭비하는 일이기 때문이지. 시나리오는 항상 저항을 최소한으로 받는 길로 움직인다. 하지만 너희는 저항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것이지.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최악의 현실을 선택하기 때문에 모든 걸 망쳐버린다. 의도와 의식의 상태에서 땋은머리를 사용해서 선택하는 것만큼 효과적이진 않지만, 너희는 그럼에도 불길한 현실을 선택해버리지. 상상했거나 계획했던 것과 맞지 않는다면 곧이곧대로 불쾌감을 드러낸다. 그것이 곧 망치는 길이다.

이것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가지를 익혀야한다.

모든 면에서 유용함을 찾는 것이지.

어떤 기분 나쁜 일이더라도, 아주 사소하게나마 불쾌감을 느끼더라도 그것에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점을 찾아내야 한다

유용함을 끌어내야한다. 이 목표를 세워두거라.

현실은 이중적이라 어떤 사건이든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밝은 면도 있기 마련이다.

허용하기

목적 지향적이여야 한다. 또 의식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목적이 있을때 시나리오가 너희를 충격에 빠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고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사실은 여유로워진 공간이 새롭고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지기 위해 낡고 무가치한 것들이 현실을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럴때 마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듯한" 사건의 시나리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유용함의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 자각력이 아주 중요한 시기이지. 이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면 너희는 유용함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일반적인 '손해를 보는' 시나리오에서 분리되어 유용함을 얻는 영화 필름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시나리오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을 뿐더러 목표를 향해 더 빨리 갈 수 있다. 땋은 머리를 사용하지 않고도 말이다.

여기에 땋은 머리까지 사용하여 유용함 이끌어내기를 사용한다면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좋은건 반딧불이가 되는 것이다. (항상 깨어있는)

영화 속의 살아있는 등장인물이 되는 것이지. 유용함을 감시하는 것은 잠에서 깨어나는 방법 중 하나다. 그 어떠한 사건도 너희를 무디게 만들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는 각성의 신호가 될 것이다. 너희의 과제는 제때에 잠에서 깨어나 현실을 보고 원하는 현실을 선택하는 것이다.

뭔가 틀릴 때마다 "유용함을 찾았다!"를 외쳐라.

그리고 세상이 너희에게 기분 좋은 일을 해주거나 도움을 주도록, 목표에 한 발자국 더 가까운 곳으로 보내주도록 허용한다.

모든 것을 허용하고 자신을 굽히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의식의 상태에서는 허용할지, 허용하지 말아야 할지 올바른 결정을 내릴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기억하거라.

유용함을 감시할 때는 곁눈질로 현실을 슬쩍슬쩍 보고 있어야 한다. 시나리오든, 주변의 등장인물이든 그 누구도 너희를 의심하지 않는다.

현존하면서도 현존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기.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이다.

  1. 무관하게 있는 것 살아있는 존재로써 영화 속을 거니는 것 현존을 드러내면 주변에서 의심하거나 경계한다. 그러니 잠든 자 들인 해라 (영화의 등장인물인 척)
  2. 미간을 사용하지 말라. 외부 의도를 사용하라. 주의를 가지고 현존하며, 다가오는 프레임을 너희의 의도로 움직여 영화 필름을 바꾸어 살아있는 자로써 영화 속을 거닐어라.

시나리오

왜 자꾸 무의식의 상태에 있으며, 아주 가끔씩만 잠에서 깨어나 그제야 깜빡 잠이 들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지 아느냐? 그것이 바로 시나리오에 따라 살고 있다는 반증이다.

주의에 대해서 자꾸 잊어버리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느냐? 그저 부주의함 때문이라고 보느냐? 아니다. 그건 너희가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이성과 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쌩각하지만 그건 환상에 불과하다. 행동의 환상의 요점은, 너희가 그것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그리고 어떤 게임의 의존적인 등장인물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까지는 현실은 계속 너희를 붙잡아둔다.

말 그대로 영화와 똑같다. 영화 속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이 어떤 입장인지 자각하지 못한다. 배우가 아니라 영화의 주인공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너희가 그저 잠들어 있는 등장인물에 불과하다는 시나리오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희를 그다지 큰 충격에 빠뜨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은 충분히 경악할만한 일이다.

그 이유는 너희가 행동의 환상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강력한 환상이기 때문에 말이다. 너희는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인다'는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다. 마치 그게 무슨 농담인 것처럼 말이다. 저런!

이 말을 믿는다 하더라도,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모르는 것처럼 너희도 마찬가지고 영화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가지고 실험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분명하게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너희는 충격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직은 시나리오가 있다는 사실을 그저 희미하게 의심하는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의 현상이지.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은 대략적인 방향에 불과하다. 마치 걸어갈 길을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운명도 선택할 수 있지.

너희가 가지고 있는 운명의 개념과 다르게 시나리오는 더 구체적이고 잔인하다. 시나리오는 하나의 필름에 있는 너희의 모든 행동과 태도를 프로그램화한 것이다. 그것은 통제할 수도 없지. 그저 현실을 정해가면서 여러 가지의 시나리오 중 한가지를 선택할 수 밖에..

너희가 시나리오를 통제하려는 습관과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통제하려는 강한 유혹이 들 것이다. 너희가 사건이나 사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면 그릇된 행동과 부작용만 잔뜩 껴안게 될 것이다.

일어나고 있는 시나리오, 현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나마 유용함 끌어내기를 통해 현실의 끄트머리를 잡고 약간만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창조자의 불꽃

너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래 세 가지가 전부다

  1. 다가오는 프레임을 움직인다. → 목표 프레임을 선택한다. 유용함을 끌어낸다. 이로써 시나리오가 너희만을 위해 움직이는 영화가 된다.
  2. 자기 자신을 움직인다. → 자기 자신을 배신하지 않으면서 변화해야한다. 태초에 너희 모두는 각각의 단점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 자체로도 완전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하지만 발전이 없으면 후퇴만 있을 뿐이다. 자기 자신을 개선하며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너희들은 내면에 창조자의 불꽃을 지니고 있다. 그 불꽃을 키우거라. 명령하며 지배하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라. 완전한 존재로써 자신의 현실을 선택하고 자기 자신을 창조하라. 그리고.. 육체적인 발전을 하여라.
  3. 자기 자신을 통제한다. 어둠의 세계에서 반딧불이 되어야 한다. 계속해서 주의를 밝히는 것이다. 제때에 주의를 감시하여 자신을 보고 현실을 보아라. 그렇게만 해도 너희에게 빛이 날 것이다. 기쁨과 사랑을 발산하여 축제로 만들거라. 만약 그렇게 된다면 주변의 달팽이들이 잔뜩 모여들 것이다. 영화 필름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주변의 모든 호감이 너희에게 집중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주의를 감시하여 필요한 방향으로 돌려놓는 방법을 배우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필요 없다. 잠들어 있는 창조자의 불꽃을 불태우는 것은 아주 유쾌한 연습이며 가치있는 목표가 아니더냐?

힌트를 몇 개 더 알려주겠다.

힘의 지배

데이트라고 했을때, 너희의 뜻대로 움직이려고 하고 바꾸려고 하지 말아라. 데이트를 요청하기 위해서 방법들을 생각하지 마라.

어떻게? 라는 질문들 자신에게 던지며 실현시킬 전략들을 수 없이 세운다.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의식은 깨어나지만, 너희가 신경 쓰는건 목표가 아니라 목표를 어떻게 실현시킬지에 대한 어리석은 상상이다. 그런데 그 상상은 너희에게 방해만 된다.

너희가 생각해낸 시나리오는 현실과 대치되지만, 그 시나리오를 고집하여 모든 걸 망쳐버리지.

어떤 허황된 상상을 하지 말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거라. 오직 목표만 생각한다면 시나리오가 알아서 너희를 목표로 인도해줄 것이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계속해서 감시하고 주의를 감시하라. 그리고 희미하게 느껴지는 너희를 지배하는 시나리오의 힘에 순순히 따라야 한다.

어려우면서 동시에 쉬운 일이다. 어려운 이유는 자신의 동기를 잊고 외부의 힘을 따르는 것이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며, 쉬운 이유는 의식과 의도를 가지고 그 힘이 너희를 인도하도록 허용하기만 하면 힘의 지배를 직접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화속에서 살아 있는 채로 산책하는 것이다.

너희는 무의식의 상태에서도 시나리오를 거스르며,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시나리오의 의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더더욱 못 견뎌한다.

그러나 너희의 생각과 행동을 반대로 해야 한다. 반사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저항하려고 하지 말고, 생각과 의식을 가지고 그를 따르도록 하여라. 잠에서 깨어난 뒤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다른 마네킹 무리에 섞여 그들처럼 행동할 것이다. 잠든 자들을 흉내 내면서도 너희만큼은 비밀스럽게 영화를 바꾸지.

그것이 연극 흉내 내기다. 시나리오가 너희를 조종하도록 의식을 가지고 허용하면서 실제로는 시나리오의 힘과 지혜를 사용하여 너희가 자기 자신을 조종하는 것이지.

순응하기

의식을 가지고 세 가지를 한 다음 잠에서 깨어나거라.

  1. 시나리오를 통제하고 하는 것을 포기하거라.
  2. 시나리오에 순응하기 시작해라.
  3. 목표 프레임을 선택하여라.

세 가지를 위해서 관찰하거라.

  1. 자신의 주의를 감시하기 위해서
  2. 유용함을 감시하고 찾아내기 위해서
  3. 다가오는 프레임을 감시하고 비추기 위해서

시나리오의 힘과 지혜를 사용하기 위해서 순응하거라.